간단이의 복잡한 이야기

스페인 바르셀로나 190217 날씨
190217, 바르셀로나, 맑았나?, 30일 차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지막 한식 만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도 이제 2일 남았다. 내일은 가까운 해변도시인 시체츠에 가기로 했으니, 오늘은 무엇을 할지 고민이었다. 어제는 피곤한 몸으로 숙소 이사를 하고, 축구경기장도 다녀와서 그런지 오늘은 푹 쉬고 싶어 졌다. 숙소의 숙박비를 가장 효율적으로 본전 치기 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24시간 동안 숙소에 최대한 오래 머물면 된다. 나름 비싼 숙소인데, 잠을 자기 위해 하루의 1/3만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 곳에선 한 번도 하루를 통째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반면에, 완벽한 숙소라고 생각한 곳인 체코, 마드리드, 포르토 등에서는 반드시 하루는 휴식으로 날려버렸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몇 년 전에는 도미토리 24인실에서 쪽잠을 자고도 초행길을 밤새서 돌아다닐 수 있었으나, 지금은 도저히 그럴 체력과 의욕이 없다. ㅠㅠㅠㅠㅠㅠㅠ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은 음식은 약간의 라면과 햇반, 볶음김치, 간편 북엇국 등 가공식품이 대부분이었다. 며칠 전에 한인마트에서 구매했던 카레가루가 생각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현지 재료로 한국식 카레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필요한 것은 당근, 양파, 감자 등의 야채와 많은 양의 고기였다.

 숙소 근처에는 슈퍼마켓, 정육점, 야채가게 등 시장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여러 상점이 모여있었다. 늦은 밤에는 문이 닫혀있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용기를 내서 가게로 들어갔더니, 계산대에 앉아있는 주인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내부에서는 몇 사람이 야채를 고르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나도 대열에 합류했다. 다행히도 무게에 따라서 가격을 정하는 상점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양만 구매할 수 있었다. 당근 한 뿌리, 감자 두 개, 양파 큰 거 한 개, 그리고 작은 스페인 고추 한 주먹. 봉투에 담긴 야채의 양은 정말 소량이었기 때문에 상점 주인의 눈치가 보였으나, 주인장은 익숙한 듯 하나하나 무게를 재서 계산해 주었다. 총 1.68유로, 2,200원 정도 나왔다.

 

감자, 당근, 고추, 양파

 

 바로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서는 주스와 맥주, 계란과 약간의 과자를 구매했다. 금액을 지불하자, 상점 주인은 호기심 찬 눈으로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그 주인장은 반색을 하면서, 자신은 네팔 사람인데 옛날에 한국에서 몇 년간 일을 했었다고 했다. 나도 네팔을 다녀왔고, 언제나 네팔에서 오는 사람들의 수고를 잘 안다고 대답해줬다.

 

싱크대에서 고기썰기
싱크대에서 고기 썰기

 

 고기도 살까 했지만,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정육점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슬리퍼 차림에 정리하지 않는 까치집 머리가 신경 쓰여서 우선 숙소로 후다닥 올라갔다. 주방에서 야채를 씻고 바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형님께 돼지고기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도마를 찾기 못해서 싱크대 위에서 야채를 썰었는데, 자꾸 칼이 엇나가면서 싱크대에 흠집을 내었다.

 

소 갈비살 1kg
소갈빗살 1kg에 단돈 4.5유로

 

 잠시 뒤, 형님은 커다란 봉투에 소갈비를 잔뜩 담아오셨다. 형님께서 정육점에 도착하자 정육점 주인은 마침 상점에 돌아와 있었다고 한다. 문제라면 정육점 주인 할아버지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형님은 바디랭긔쥐로 돼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돼지를 손짓 발짓으로 표현하다가 주인이 이해하지 못하자, 손가락으로 코를 지그시 눌렀다고 한다. 그제야 정육점 할아버지는 여기는 양고기와 소고기밖에 없다고 동물 울음소리로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소고기로 달라고 울음소리로 다시 대답하신 형님, 알았다고 끄덕이면서 고기를 잔뜩 썰더란다. 그러면서 자신의 왼쪽 가슴 아래를 가리키는 할아버지. 그렇다. 소갈비 살이라는 뜻이다. 언어가 안 통해도 어떻게든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님 : (손가락으로 돼지코를 만든다.) = 돼지고기 있나요?

정육점 : (고개를 가로젓고선, 양 울음소리와 소 울음소리를 낸다.) = 돼지고기는 없고, 소고기와 양고기만 있다.

형님 : (소 울음소리와 검지 손가락만 편다.) = 소고기 1kg 주세요.

정육점 : (손가락으로 가슴 아랫부분을 문지른다.) = 갈빗살이다. 

계산은 지폐랑 동전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니 알아서 집어가셨다고 한다.
유일하게 소통된 단어는 킬로그램(KG) 뿐.

 

문제라면 소고기가 얼마나 크고 질긴지, 싱크대 위에서 칼질을 하려니까 흠집을 엄청 만들었다. 그럼에도 고기가 잘리지도 않았다. 어찌어찌 카레에 넣을 양을 적당히 자르는 데 성공했다. 고기를 볶다가 반 정도 익었을 때, 야채를 쏟아 넣고 같이 볶아준다. 어느 정도 익었다고 생각되면 물과 카레가루를 붓고 열심히 끓여준다. 눌어붙기 쉬우니까 열심히 국자로 저어주었다.

 

점심식사 카레밥
볶음김치, 카레, 오뚜기밥

 

 지금까지 정말 아끼고 아꼈던 볶음김치를 한 끼에 하나씩 먹기로 했다. 여행 중반까지는 도저히 못 버틸 때 까먹을 예정이었던 비상식량 취급이었는데, 지금은 처치곤란이다. 아끼면 똥 된다. 사진 속의 카레는 꽤 묽어 보이지만, 카레 반 고기 반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길. 쇠고기를 넣은 카레는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칼로 썰 때는 잘 잘리지 않아서 엄청 질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익혀서 놓으니 의외로 질기지도 않고 맛도 괜찮았다. 갈빗살이라서 그런가, 쫄깃함에 육즙까지 아주 만족스러웠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선 해가 질 때까지 푹 쉬었다. 덕분에 밀린 일기를 열심히 써서, 진도를 꽤나 따라올 수 있었다. 

 


 

 달콤한 낮잠에서 깨고 나니, 벌써 저녁시간이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완벽한 휴식이었다. 다행히 찬장 안에서 도마를 발견했다. 그래서 남은 쇠고기를 전부 적당한 크기로 썰어둘 수 있었다. 그리곤 아침에 다녀왔던 야채가게에서 상추와 파 등 모자란 야채를 더 사 왔다. 남아 있는 고추장 불고기 양념으로 고기와 야채를 손질하고 재운 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형님의 아이디어로 남은 카레에 파스타 면을 섞어서 카레 파스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곧장 슈퍼에 가서 적당한 굵기의 파스타를 사 왔다. 아까 네팔리 슈퍼마켓 주인과 반갑게 저녁 인사를 했다. 정말 카탈루냐 광장 주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몇 개월 산 것 같은 기분, 너무나도 정겨운 곳이다.

 

카레 스파게티와 고추장 소갈비불고기
카레 스파게티와 고추장 소불고기

 

  준비가 얼추 끝나자, 곧장 요리를 시작했다. 파스타 면을 삶으면서 재워둔 고추장 불고기를 프라이팬에다가 볶았다. 매콤한 양념과 맛있는 쇠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잠시 뒤, 약간 설익게 삶아진 파스타 면을 카레가 담긴 냄비에 옮긴 뒤, 다시 카레와 함께 끓였다. 면과 카레가 전부 냄비에 눌어붙을 수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휘저었다. 고추장 소불고기와 카레 파스타라니, 나로서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다. 사실 이런 요상한 조합을 일부러 만들어 먹으려고 하지는 않겠지......?

 

카레 스파게티

매콤하고 육즙이 넘치는 소갈비 불고기
카레에 퐁당 스파게티 // 쫄깃한 소갈비 불고기

 

 만들어놓고 보니, 양이 장난 아니었다. 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정말 꽁꽁 숨겨두었던 비장의 소주들도 전부 바깥으로 꺼내어졌으며, 슈퍼마켓에서 맥주도 넉넉히 사 왔기 때문에 오직 먹고 마실 뿐이었다. 카레 파스타의 의외로 잘 어울렸다. 딱 맞게 삶아진 파스타는 카레를 머금고 있었다. 내가 만든 특제 카레가 형님의 파스타 삶는 솜씨에 그대로 어우러졌다. 특히 스페인의 작은 고추를 잔뜩 집어넣었기 때문에 꽤 매웠는데, 그것이 파스타 면의 익숙하지 않은 식감을 잘 해결해주었다.

 

마지막 한식만찬
유럽에서의 마지막 한식만찬

 

 스페인 소갈비로 만든 고추장 불고기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돼지불고기만 먹어왔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맛이 너무나도 좋았다. 특히 볶으면 꽤 질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부드러웠다. 고기 한 점을 집어먹으면 소주가 한 잔이 털리는 무서운 안주였다!! 프라이팬에 남아있는 것 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책길에서 만난 허스키 형제
산책길에서 만난 허스키 형제

 

 배부른 식사를 마치고, 술이 대부분 떨어지자 약간 알딸딸해졌다. 오늘은 근처의 상점에 가는 것 외엔 이동한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치 포켓 스탑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골목 끝에 있는 놀이터에 가니까 몇몇 아이들이 늦은 시간임에도 열심히 뛰어놀고 있었다. 또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특히 목줄 없는 거대한 시베리안 허스키 형제를 만나서 살짝 쫄기도 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그리고는 각자 새벽 3시, 새벽 5시에 잠들었다고 한다. 아, 술이 부족했나?


19/02/17 지출내역

- 야채가게

오전 (당근, 감자, 양파, 고추) : 1.68 eu

저녁 (상추, 양파, 파, 고추) : 2.08 eu

- 슈퍼마켓

오전 (물, 계란, 맥주) : 6.1 eu

오후 (파스타, 주스, 감자칩) : 4.0 eu

- 정육점

소갈비 1.0kg : 4.5 eu

 

총 16.28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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