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이의 복잡한 이야기

 

190215, 바르셀로나, 매우 맑음, 28일 차 밤 일정

 


 

스페인 바르셀로나, 길거리 케밥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가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특히 겨울철에는 집시들이 따뜻한 스페인 등지로 남하(?)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여행을 하는 한 달 동안 들렀던 도시 중, 유일하게 소매치기를 만난 도시이기도 하다. 나름 소매치기가 정말 많다는 파리와 로마에서도 우리에게 접근하는 치들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 초기라서 긴장을 하고 있었음에도 접근하는 기색도 느끼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하길, 소매치기들이 내 덩치에 쫄아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구나 싶었다.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바르셀로나가 마지막 도시여서 긴장도 풀렸고, 지금까지 소매치기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귀신같이 방심의 냄새를 맡은 카탈루냐 손도둑놈들이 우리에게 슬금슬금 접근하기 시작했다.

 


 

 구엘 공원에서 지하철 역까지 20분 정도 걸어가니까 해가 완전히 졌다. 우리는 바로 지하철을 타고 1호선 TORRASA 역으로 향했다. 좁디좁은 구시가지의 낡은 아파트를 탈출하기 위해 새로이 예약한 숙소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바르셀로나 서쪽에 있는 외곽지역으로 대부분 거주지이다. 밤에도 시끄럽고 번쩍번쩍한, 마치 홍대 거리 같은 숙소 근처와는 분위기 차이가 심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버스로 10분 거리에 바르셀로나 FC 홈 경기장 캄프 누가 있다!!

 

 

닭고기와 감자튀김

 

 

 숙소 위치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근처에 넓은 공원이나 포켓 스탑이 많은 곳을 찾았다. 하지만 거주 지역이라서 그런지 포켓스탑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없었다. 내일은 어쩔 수 없이 숙소 근처의 락커룸에 우리 짐을 맡겨두고 카탈루냐 광장에서 커뮤니티 데이를 즐기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구엘 저택, 구엘 공원 들르고 현재 TORRASA 역에 오기까지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집에 가서 저녁을 만들어 먹을까 했지만, 너무나도 배가 고팠다. 지하철역 사거리에 있는 케밥집을 발견하곤 무작정 들어갔다.

 

 

엄청나게 큰 케밥과 감자튀김

 

 

 가볍게 케밥과 감자튀김, 닭고기, 콜라를 주는 세트 메뉴를 2개 시켰다. 가격은 한 세트에 무려 6유로!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주문을 마치고, 종업원과 주인의 이상한 눈길을 받으면서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뒤, 엄청난 크기의 케밥과 사이드 메뉴가 테이블 가득가득 채워져 갔다. 양이 꽤 많아서 콜라 한 캔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몸에 정말 나쁜 맛이 난다는 뜻은 정말 맛있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양도 맛도 가격도 정말 괜찮은데, 위치까지 괜찮아서 한 번 이상은 더 방문할 것 같다.

 

 

Nomi Doner에서의 만찬

 

스페인 바르셀로나 TORRASSA 역, NOMI Doner

 


 

 식사를 마치고 1호선을 타고 그대로 숙소 근처로 이동했다. 카탈루냐 역에서 내리면 숙소와 정말 가깝지만, 한 정거장 전인 바르셀로나 대학 역에 내려서 아직 덜 본 건축물들을 감상했다. 카사 밀라나 카사 바트요도 근처에 있었지만, 숙소와는 방향은 정반대였기 때문에 가질 않았다. 그런데 길가에 마치 구엘 공원에서 뚝 떼어서 가져온 듯한 타일로 만들어진 벤치를 발견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역시나 가우디가 남겨놓은 가로등 벤치가 맞았다. 가볍게 엉덩이 도장을 찍어주고, 카탈루냐 광장으로 향했다.

 

 

가우디가 만든 가로등 벤치

 

 

 카탈루냐 광장의 야경은 어제 열심히 봤기 때문에, 지나쳐서 LICEU 역 주변으로 향했다. 이곳은 가장 사람이 많고 상점도 밝게 빛나고 있는 가장 핫플레이스였다. 어제 식료품을 구매했던 카르푸도 이 거리에 있다. 거리에는 여러 그룹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가장 많은 인파에 가서 조금씩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가 작은 남자와 키가 크고 마른 남자 두 명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서 왔니?

 뭘 했니?

 이름이 뭐니?

 등의 정말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을 봐서 신기하게 생각하는구나 식의 국뽕찬 착각과 함께, 짧은 영어로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공연에도 눈이 팔려있었기에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뒤쪽에 서 있는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가만히 뒤에서 서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겉옷을 팔에 둘둘 말아서 깁스처럼 배에 얹고 있었다.

 갑자기 뇌리에 스치는 깨달음! 이 새끼들 소매치기 2인조가 분명하다! 한 명이 말을 걸어서 신경을 쏟게 만들고, 옷으로 손을 숨긴 다른 사람이 손장난을 하는 식이다. 나만 작은 크로스백을 앞으로 매고 있었기 때문에, 뒷에 서 있는 놈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붙는 것을 느꼈다. 나는 형님을 마크하면서 뒤로 물러났고, 바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소매치기 새끼들, 내 예리한 눈초리는 못 피하지. ㅋㅋㅋㅋㅋㅋ

 

 

Liceu 역 근처에서 거리 공연 중(위험)

 

 

 우리는 방금의 어설픈 소매치기들을 비웃으면서 숙소로 향했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숙소로 가는 골목은 정말로 어둡고, 술 취한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빠른 속도로 숙소로 이동해야만 한다. 그런데 갑자기 웬 백인이 다가와서 불 좀 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살짝 경계를 하고 라이터로 불만 붙여줬다. 속사포로 신상명세 질문을 해대는 그놈의 목소리를 모두 무시한 채, 빠른 속도로 숙소 앞 골목으로 진입했다. 빠르게 벗어나려고 했기에, 그놈이 내가 무시하자마자 바로 형님에게 말을 걸었던 것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형님께서 나를 따라서 빠르게 뒤를 따라오셨겠거니 하고 긴장을 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돌아서 살펴보니, 그놈이 형님한테 딱 붙어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소리쳐서 형님을 골목으로 인도했고, 형님은 바로 골목으로 진입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한 10걸음 걸었을까, 갑자기 뒤에서 "HEY!!!!"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왜 부를까? 우리를 부르는 것이 맞나? 해코지하려고 그러나? 도대체 뭘까? 그냥 무시하고 가는 것이 좋겠지 않을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HEY!!!!"라고 부르면서 그 사람이 골목 안까지 따라왔다. 뒤를 돌아보니, 소리친 사람은 불을 빌려달라는 백인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다른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흔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스마트폰이다.

 헉!!!! 손에 들린 저것은 형님의 서브 스마트폰이었다!! 형님은 다급하게 뒷주머니를 살폈고, 주머니가 텅 비었다고 했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형님 폰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런데 저 친구는 도대체 뭘 하려고 우리를 불러 세운 것일까? 저걸 빌미로 협박하려는 것일까? 꾀어서 더 큰 것을 요구하려고 하는 것일까?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우리에게 다가온 그 사람은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고는 갈 길을 갔다.

 

 

??

 

???

?????

 

 뭐지? 도대체 뭐지? 어떻게 저게 저기 있지? 그리고 왜 돌려준 거지? 무수한 의문과 우리가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황당함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신경 썼는데, 도대체 어느 순간에 저것을 빼간 것일까? 알고 보니 내가 숙소 골목에 진입하는 순간, 형님은 나를 못 보고 계속 직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즉시 백인 놈은 형님에게 말을 걸었고, 갑자기 넘어지는 척을 하면서 형님에게 안기듯이 몸을 비볐다고 했다. 막 소리치면서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은 덤. 형님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그냥 술이 취해서 이 놈이 맛이 갔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때쯤, 내가 소리치자 그놈을 밀쳐내고 숙소 골목으로 진입했던 것이다. 그렇게 부비부비대는 찰나에 뒷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쏙 하고 꺼내간 것이다!

 하지만 왜 옆에 있던 친구 놈은 그것을 돌려준 것일까? 빼앗겼다가 돌려받은 스마트폰은 액정이 살짝 파손된 갤럭시 S5다. 19년 기준으로 조금 연식이 된 스마트폰이긴 하지만, 어디에서든지 팔아먹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나 구려 보였나??

우리가 불쌍해 보여서??

술 취해서 하는 단순한 장난인가??

도대체 왜????

 

 형님께서는 포켓몬고 용 서브 스마트폰이었기 때문에, 만약 정말로 잃어버렸다고 해도 큰 피해는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내 몸을 빼는 그 순간까지 형님을 케어했으면,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일인데 너무 바보 같았다.

 우리는 길거리에 멍하니 서서, 저런 식으로 아무도 모르게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체크했다. 스마트폰, 지갑, 현금, 담배 등 가치가 높은 것부터 순서대로 확인했다. 형님의 아이코스 케이스 전체를 잃어버린 줄 알고 대경실색했으나, 다행히도 가방 속의 겉옷 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골목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어이가 출타해서 눈알만 또르르 굴리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잘 준비를 해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저런 수법에 당했다는 것에 너무너무 분하고, 형님을 케어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계속 튀어나왔다. 결론적으로 진짜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말 거는 놈들은 전부 소매치기거나 사기꾼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을 여행이 거의 끝날 시점에 깨닫게 되다니 정말 기형적이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수많은 상상이 일어나고 다시 가라앉았다.

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돌려달라고 요청했다면 과연 그것을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

싸우면 이길 수 있나?

그놈이 도망치면 잡을 수 있나?

의외로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 채, 황당하게도 돌려준 받은 것이 정말 정말 최선의, 최고의 상황이었던 것은 아닐까?

돌려받았을 때, 땡큐라고 말했어야 했나?

FUCK이라고 욕을 했어야 했나?

만약 아이폰이었으면 절대 안 돌려줬겠지?ㅋㅋㅋㅋ

아... 킹 받네. 진짜로

 

등의 쓸데없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계속 뒤척이다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19/02/15 지출내역

 

- 대중교통 10회 권 1매 : 10.2 eu

- 케밥(TORRASA 역 앞) : 12.0 eu

- 갤럭시 S5 : ± 0.0 eu

 

총 22.2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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