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이의 복잡한 이야기

190120 로마 날씨
190120, 약간 흐림 -> 비, 로마, 2일차


 잠에서 깨어보니 해는 중천이고, 시간은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시차 때문인지 몸이 아주 피곤했다. 요새 살이 심하게 찌는 바람에 코골이가 심해져서 코골이 밴드와 콧구멍 속에 뿌리는 약까지 준비해왔다. 이 준비가 진짜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오직 형님만 알리라. 난 도중에 깨지도 않고 내리 잘 잔 것 같은데도 이렇게나 피곤한데, 형님은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약과 밴드를 최대한 이용하는 한편, 형님이 잠든 이후에 잠을 청하겠다는 전략까지 세웠지만 어제는 머리가 닿자마자 잠에 빠진 것 같다. 형님 왈, 코를 골기는 골았지만 '버틸'만 했고 자신도 푹 잤다고 하셨다. 으음... 돈을 더 투자해서 코골이 방지 턱 고정 밴드를 사 왔어야 했나 싶다.

 우리는 로마 숙소만 딱 예약하고선 완전히 무계획으로 왔기 때문에, 오늘 일정은 전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늦게 도착해서 늦게 잠들기도 했지만, 여행의 모토가 여유로운 하루하루였다. 관광지에 들러 사진만 찍고 떠나는 패키지 관광 같은 행위는 절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좋게 말하면 느긋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으른 그룹이었다. 씻고 준비하는 도중에 콜로세움이 숙소에서 꽤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의 일정은 콜로세움으로 시작. 우리는 12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멀리서 보이는 콜로세움
멀리서 보이는 콜로세움 외벽.

 숙소를 나서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내리막길의 끝에 부서진 콜로세움 벽이 보였다. 문제라면 그때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벽에 달무리가 짙게 들었다 했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야 준비해 뒀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여행의 첫날부터 비를 맞다니 정말 처량했다. 어제 숙소에 입장하기 전에 비를 맞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시원하게 뻗은 직선 골목을 걸어갔다. 우리는 콜로세움에 도착하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적당한 곳을 찾아 골목을 이리저리 헤맸다. 가격도 비교도 해보고, 로컬 레스토랑(손님이 꽤 많았다.) 앞에서 메뉴판을 들춰보는 등 나름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가장 처음에 눈여겨본 피자집으로 최종 결정.

 

네모난 피자를 파는 가판대로마에서 먹는 피자
네모네모 피자피자

 크게 3조각에 캔 음료까지 해서 5.0EU라는 정말 저렴한 피자였다. 이탈리아에 오면 역시 첫 식사는 피자로 먹어야지! 그런데 이탈리아 피자가 이렇게 두껍고 토핑이 많았었나 의문이 들었다. 미국식 피자와는 다른 점이라고는 네모난 모양이라는 것뿐, 얇고 적은 토핑이 올라간 씬 피자 같은 것을 기대한 나는 조금 의뭉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탈리아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로마식은 이렇게 두껍고 토핑이 많지만 나폴리에는 마르게리타라고 우리가 흔히 아는 씬 피자를 대표로 내세우고 있었다. 어쨌거나 맛은 아주 좋았다. 양은 훨씬 더 좋았다. 첫 여행, 첫 식사가 그 나라의 대표 음식이라니,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여행이 아니겠는가. 비가 더 내리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코로세움?

 여우비는 조금씩 우리의 옷을 적시고 있었지만 콜로세움에는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것은 눈에 잘 띄는 조끼를 입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여행사 직원들이었는데, 우리는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땡큐 쏘리를 외치며 매표소로 곧장 향했다. 콜로세움 입장권은 바로 옆의 포로로마노 입장권까지 끼워 팔고 있었는데, 옛 로마의 중심지 유적이었기에 호기심에 통합 입장권을 구매했다.

 시작은 보안검색대의 줄이었다. 정말 많은 관광객과 정말 많은 한국인들... 을 볼 수 있었고, 우리는 모른 척 서서는 줄이 어서 줄기를 바랐다. 가방과 점퍼를 검색대 내로 밀어 보내곤 몸수색을 거친 뒤, 드디어 콜로세움 안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것은 아까보다 더 기다란 줄이었다. 한숨을 내쉬곤 바로 뒤에 붙어 섰다. 잠시 후에 혹시 다른 곳에 입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줄을 이탈해 앞질러서 이동했다. 엥, 그런데 보안검색대 이후의 줄은 내부 매표소의 줄이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 엄청난 페이크에 꽤나 당황했다. 도대체 왜 내부와 외부에 매표소가 따로 있던 것일까?? 뒤쪽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 다른 관광객들을 애도하며, 간단한 입장권 검사 후 콜로세움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긴 줄과 웅성거림은 배경이 되어 우리를 밀어주었다.

 

콜로세움 내부 모습
아직도 복원 중인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진짜 정말 컸다. 지하층과 경기장인 그 바닥, 층수가 올라갈수록 까마득해지는 관중석까지. 이런 건축구조물이 일부만 무너지고 대지를 밟고 서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경기장 내부를 비를 맞아가면서 한 바퀴 크게 돌았다. 층별로 내부에는 박물관이 외부에는 색다른 경기장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외벽 중 가장 높은 곳에서 관광객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도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복잡한 내부 구조 덕에 우리는 엄청 헤맸다. 내부의 박물관을 거쳐서 밖으로 나오니 비가 조금은 잦아든 것 같기도 했다.

 


 사실 포로로마노는 생각지도 못한 관광지여서,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콜로세움 바로 옆이라는 점과 내부의 돌덩이 하나하나가 포켓 스톱이라는 점이 우리를 이끌었다. 역시 보안검색을 위한 기나긴 줄에 서서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외국인들은 줄을 서서는 담배를 맛있게 피워댔다. 그것을 따라 해서 일탈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앞에 대규모 한국인 여행객이 있었기에 눈치를 보다가 참았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줄 끝에서는 우산장수가 3단 우산을 열심히 팔고 있었다. 어떤 외국인이 그것을 구매하고는 잠시 뒤에 펼쳤는데, 손잡이 부분과 우산살 몇 개가 툭하고 분리되어버렸다. 우산을 산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산장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고, 그 젊은 외국인은 허허 웃으며 우산을 버렸다.

 포로로마노는 정말 돌기둥과 건물 잔해가 전부였다. 의외로 파르테논 신전처럼 로마시대 양식의 멀쩡해 보이는 건물이 보이기도 했지만, 압도적으로 잔해로 이루어진 공원이었다. 그렇기에 그늘이나 지붕 같은 것이 거의 없어서 한여름에 오면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입구와 출구가 한정되어 있고 꽤나 넓었기 때문에 한 번 진입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출구인 줄 알고 접근했더니 다른 건물에 막혀서 그 주변을 헤매기도 했다. 포로로마노를 나와 조국의계단을 구경하면서 근처에서 가이오가 레이드를 했다. 3 계정으로 엄청 힘들게 클리어 가능하더라.

고대 로마 유적지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 1/3, 한 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넓음
로마 랜드마크 조국의 계단
조국의계단, 웅장하고 엄청나다는 생각밖에 안드는 엄청난 건축물.

 


 비가 계속 와서 근처 카페에서 쉴까도 생각했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아 계속 전진하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는 판테온이었다. 지붕 정 중앙에 구멍이 뻥하고 뚫려있는데 내부에서 나오는 상승기류로 인해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신기한 건축물이다. 마침 지금 비도 내리고 있어서 정말 기대하면서 진입했다. 그런데 웬걸. 비가 똑또독 새서 아래 바닥을 모두 적시고 있었다...... 심지어 그 바닥에는 구멍이 뚫려있어서 배수가 아주 원활하게 되는 것 같았다. 형님께 겁나게 큰 구멍이 있는데 비가 새지 않는 건물이라고 떵떵거리면서 말씀드렸는데, 구멍 바로 아래에서 비를 맞으니 아주 당황스러웠다. 빠르게 구글링해서 알아보니, 상승기류가 생성되려면 출입문을 닫아야지 외부 공기가 천장 쪽으로 만 빠져나가게 된다고 한다. 물론 관광지이므로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근처에 로마 3대 젤라또 집 중에 지올리띠가 바로 옆 블록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비도 맞고 날씨도 너무 추워서 젤라토라는 얼음과자를 전혀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ㅠㅠ.

 

로마 관광지 판테온 외부모습판테온 천장에 뚫려있는 구멍
판테온 외관//판테온 구멍
로마 관광지 판테온 내부 모습
판테온 내관

 


 비도 그쳐서 축축한 바닥이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판테온 내부에서 앉아 쉬면서 근처 유명한 식당을 검색해봤고, 조금 못 미덥지만 구글 리뷰와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아서 결정했다. 꽤나 한국인에게 유명한 식당인 듯했다. 이태리 정통 까르보나라와 얇은 화덕피자를 맛볼 수 있다는 점과 판테온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는 점이 우리를 이끌었다. 찐 이태리 요리라니. 앞에 1팀 정도의 웨이팅이 있었고 우리는 잠시의 기다림 후에 종업원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자마자 종업원이 하는 말.

"Ciao."발음은 쨔오, 뜻은 '안녕.'

 

그 말은 들은 내가 큰 소리로 한 말.

"No Ciao!" 발음은 노 쨔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뜻은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

아마도 전달된 뜻은 "안녕 못 해, 이 새기야!"

 

ㅎㅎㅎㅎ......

 

어쩐지 종업원이 황당하게 쳐다보면서 당황해 하더라니.... 매표소에서나 숙소에서나 모두 영어를 듣고 영어로 답했기 때문에, 최초로 들은 이탈리아어를 이탈리아어로 생각하지 못했다. 형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짜오짜오 그러니 우리를 중국인으로 생각한다고 엄청난 오해를 해버렸던 것이다. 거기에 인사를 거절해버리는 무례까지 범하고 말았다.

 이틀 뒤, 남부 투어 가이드의 토막 이태리어 강의 덕분에 짜오의 참뜻을 알아차렸고, 종업원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Cantina e Cucina

Cantina e cucina 한국어 메뉴판Cantina e Cucina의 가지피자
Cantina e Cucina의 한국어 메뉴판//가지 피자
Cantina e Cucina의 이탈리아 전통 까르보나라
이탈리아 까르보나라

 

 음식 맛은 놀라웠다. 까르보나라는 확실히 한국의 크림 범벅 파스타와는 차원이 달랐다.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파스타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나에겐 간이 맞지 않았다. 피자는 그래도 익숙한 씬 피자의 맛이어서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맥주가 조금 비쌌는데, 200ml 한 잔에 4.0EU가 넘는 가격이어서 다음부터 웬만하면 물을 시켜서 마시자고 합의를 봤다. 한국어 메뉴판 덕에 당황하지 않고,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입맛에는 맞지는 않았으나 현지 식사로 점심 저녁을 모두 때운 덕에 조금 뿌듯했다.

 

로마 관광지 트레비 분수
거대하고 웅장한 트레비 분수

 


  식사 후, 판테온 앞 오벨리스크 체육관에 뜬 그란돈 레이드를 시도했다. 이탈리아 와서 처음으로 우리의 3계정 외의 다른 유저들과 함께 레이드를 수행했고, 여유로운 클리어에 정말 기쁨의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여행객 같았던 그 외국인 유저에게 원고 정 스킬을 전수하기도 했다.

 마침 비도 그쳤고, 길도 익힐 겸 걸어서 숙소까지 갔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도 하나 던지고는 한인마트가 있는 골목을 찾아 헤맸다. 한인마트는 테르미니 역 근처의 대로변에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런가 이미 상점은 문을 닫았다. 목표였던 한인마트가 닫혀있어서 그랬을까, 그 이후부터 갑자기 짜증이 막 나면서 무기력하고 엄청 몸이 힘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걸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자꾸 형님께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졸랐다. 마트에서 물품을 산 뒤에 지하철을 이용하자고 합의를 하고, 근처의 COOP 마트에서 물과 음료수 약간의 고기와 수프 등을 구매했다.

 나는 상점에 나오자마자 과일주스를 반 통 넘게 꿀꺽꿀꺽 마셨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몸이 순식간에 힘이 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당이 떨어져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극과 극의 정신상태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행자인 형님께 너무 징징댄 것 같아 아주 창피했다. 갑자기 힘이 나고 정신이 맑아져서 그냥 걸어가도 된다고 말했다. 재활용 봉투가 손가락을 파고 들어서 아주 아팠지만, 당당하고 힘차게 걸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오는 길에 한국 컵라면을 파는 상점이 있어서 크게 비싸지 않은 값에 두 개를 구매했다. 근데 이걸 왜 여기서 팔지? 여긴 분명 이탈리아 구멍가게인데??

 

컵라면과 소주 그리고 특제 고기볶음
고기볶음, 라면, 처처처처음처럼

 우리는 숙소에 도착해선 어떤 부위고 어떤 동물인지 애매한 고기를 가져온 고추장에 볶고, 물을 끓여 컵라면을 준비했다. 무사히 첫 번째 날을 마감한 것을 기념하며 640ml 큰 소주 병을 전부 마셨다. 매콤한 컵라면 국물에 오늘 느끼했던 피자치즈와 까르보나라 맛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직 하루도 안 지났는데 한국 음식의 매콤 얼큰함을 찾다니...... 최대한 한식당은 방문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조금 걱정이 된다. 좁디좁은 샤워실에서 겨우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엄청 피곤한데 엄청 드르렁거릴 것 같다. 조금 무리했더니 벌써 시차적응이 끝난 것 같다.

 


19/01/20 지출내역

 

-점심식사(동네피자집) : 5.0eu x2 = 10.0eu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입장권 : 12.0eu x2 = 24.0eu

-생수: 0.4eu

-저녁식사(CANTINA E CUCINA) : 26.5eu + tip 3.0eu = 29.5eu

-마트 장보기(COOP) : 9.3eu

-신라면 큰사발 2개 : 2.5eu

-트레비 분수 투척용: 0.2eu 형님 꺼, 0.1eu 내 것 = 0.3eu

 

총 76.0eu

 

기타

-남부투어(마이리얼트립) 예약 65,000 x2 =130,000원

-에어비엔비 1박 추가 = 약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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