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이의 복잡한 이야기

 우리는 공항에 여유롭게 도착해서 살짝 얼탔다. 공항철도가 1시간도 안 걸려서 우리를 제2공항 청사로 데려다주었기 때문이다. 13시 1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인데 현재 시각은 9시 반이다. 체크인과 화물 수속을 하고 바로 입장을 하기엔 너무 시간이 여유로웠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없이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이제 유럽에 가면 얼큰한 음식을 많이 접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최대한 매콤하고 얼큰한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짬뽕탕을, 형님은 새빨간 김치찌개를 드셨다.

 

인천공항 푸드코트의 교동짬뽕밥
지하 2층 푸드코트에서 사 먹은 교동짬뽕밥

www.airport.kr/ap/ko/map/mapInfo.do?SN=1886#none

 

인천국제공항

 

www.airport.kr

인천 국제공항 제2 터미널 흡연구역 지도

 

 지하 1층 양측면 버스정류장에도 흡연구역이 있다는 사실은 나도 어쩌다가 알게 되었다. 끽연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는 등 여유를 부리다가 아에로플로트 수속 구간인 C블록으로 이동했다. 이코노미 수속 창구는 줄이 엄청나게 길었기 때문에 짐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기다렸다.

 아에로플로트 이코노미석으로 수속 가능한 짐의 무게는 23kg였다. 공항 내에 있는 저울에 무게를 재어보니, 내 배낭은 9.5kg, 형님의 캐리어는 19.0kg으로 아주 여유로웠다. 우리는 즉시 편의점에서 640ml 소주 페트병을 여럿 구매해서 가방 속에 채워 넣었다.ㅋㅋㅋ다른 사람들이 전부 수속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줄이 없어지자 기다림 없이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참고로 대용량 보조배터리는 수하물에 넣고선 체크인이 불가능하다.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 듣고는 배낭 깊숙이 있던 보조배터리를 겨우 꺼냈다. 그러곤 급히 탑승시간이 가까워져서 급히 체크인을 했는데, 그 이후로 꺼내놓았던 보조배터리의 존재를 완전히 까먹었다. 보조배터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여행 5일 차가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에로플로트 탑승수속 구역
아에로폴로트 탑승수속 구역

 

 우리는 입국 심사장에 막 입장하려는 찰나에 도시락 와이파이 수신기를 수령하지 못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고, 내가 짐을 지키는 동안 형님은 후다닥 다녀오셨다. 여권을 확인하고, 기내 반입용 수하물을 검사하는 출국심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여기서 예비용으로 잔뜩 준비했던 라이터를 대부분 뺏겼다. 터보 라이터 하나만 남기고 모두 공항직원의 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다. ㅠㅠ 어디서 시간을 낭비했는지 생각해봤는데, 도착하자마자 아침식사를 한 것이 문제였다. 탑승시간 마감 20분 전이었지만, 구매해야 할 면세품목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여유를 부렸다. 누나가 부탁한 물건과 유럽에 가서 사용할 구름과자를 전부 구매한 뒤, 흡연장까지 찾아갔다. 우리가 게이트에 도착하자 아직도 줄이 반이나 남아있었기에 뛰지도 않았다.

​ 아까 체크인을 마친 뒤에 받은 탑승권의 자리배정은 17A와 17C였다. 우리는 항공사 직원이 실수로 자리를 떨어뜨려 놓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우리의 가운데에 앉아서 수시간을 함께 비행기 여행을 함께 해야 할 이름 모를 사람을 원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좌석에 도착했을 때, 나는 씩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자리는 비행기 출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엄청나게 편안한 자리였던 것이다! 17A와 17C는 서로 붙어있었으며, 오직 17A, 17C만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다른 이코노미석보다 전방이 엄청 여유로워서 다리를 쭉 뻗는 것이 가능했다. 가장 꼴찌로 체크인을 했는데, 이런 자리가 남아있다니! 엄청난 행운이었다. 곧 비행기는 이륙했고, 나는 포근한 부유감을 느끼며 불곰국으로 날아갔다. 

 

3끼의 기내식
눈보라치는 모스크바 공항
눈발이 흩날리는 모스크바 공항

  장장 8시간 30분의 비행이 끝나고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주변의 눈을 날려버리면서 활주로에 착륙했다. 생애 처음으로 불곰국 러시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눈보라가 치는 모스크바 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했다는 것에 놀랐고, 엄청난 모스크바 공항의 크기에 다시 한번 놀랐으며, 마지막으로 2013년 이후로 절대 금연 공항이라는 말에 엄청나게 놀랐다. 창 밖의 공항직원은 눈보라를 맞으면서 겁나 맛있게 끽연 중이었지만 말이다.

 형님께서는 시차를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히 4-5시간의 비행이라고 착각을 하셨기 때문에 엄청 충격을 받으셨다. 비행시간이 5시간을 넘어가자 '뭔가 이상하다, 너무 오래 비행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ㅋㅋㅋ 우리는 인천공항에도 흡연구역이 있었기 때문에, 모스크바 공항은 더욱 당연히 흡연구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장기간 비흡연에 대비가 되어있지 전혀 않았다. 미친 듯이 구글과 네이버를 통해 검색해보고, 물과 콜라를 구매하면서 점원에게 물어보는 등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흡연구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흡연구역이라는 장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세레메티예보 모스크바 국제공항 내부
모스크바 국제공항 내부 모습

 

 그런데 아이코스 라운지가 있어서 내부에서 해당 전자담배 사용이 가능하다는 블로그 글을 발견했다!! 마침 형님의 담배가 아이코스였기 때문에 신나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은 glo 라운지로 바뀌어있었고, glo 사용자가 아니면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glo를 들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서 흡연을 하고 있는 다른 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glo를 구매하는 한이 있어도 엉덩이를 붙이고 니코틴을 보충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이 생각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화장실에서 그냥 시도하는 것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엄청나게 났기 때문이다. 승객보다 공항 직원들이 화장실에서 대놓고 핀다고 하는 글도 읽었었다. 러시아 형님들은 수틀리면 팬다는 선입견 때문일까? 괜히 공항의 규칙을 어기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실제로 걸리면 약 2만 원가량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버티다 버티다 못해 결국 CCTV의 사각에서 인적이 드문 공간에서 아이코스를 재빠르게 피는 방법으로 니코틴을 충전했고, 2시간여의 대기 후에 로마로 출발하는 경유 비행기를 탑승했다. 다행히 와이파이 수신기는 러시아도 유럽으로 쳐 준 것인지 잘 작동했다. 덕분에 지루한 환승 대기시간을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추신 - 2020년 현재는 전자담배 GLO 라운지도 폐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불곰 형님들의 중심공항,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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