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이의 복잡한 이야기

 크르릉

 '머리를 올리다' 라는 관용구가 있다. 원래 의미는 조선시대 여성이 혼인을 하게 되면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골프에서는 처음으로 첫 홀 라운딩을 나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혼인에 비견될 만큼 첫 라운딩을 나서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나는 골프채를 처음 쥔 날 머리를 올리게 되었다......


나름 골프웨어

아침을 먹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대충 구색을 맞춘 골프웨어였는데, 무척 어색했다. 약 1시간 반을 달려서 벵갈루루 시 바로 옆에 있는 지역인 Kolar 콜라에 도착했다.

 

골프장갑

평소 구기 운동은 정말 좋아했지만 골프라는 운동은 완전 처음이었다. 문제라면 골프가 초보자에겐 정말 많이 어려운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랩이나 스윙같은 기초적인 사항은 간간히 집에서 연습하긴 했지만, 직접 공을 치는 것은 전혀 달랐다.

 

골프 연습장

골프공은 왜 이렇게 작은 걸까? 천천히 휘둘러도 정타가 전혀 맞지 않았다. 스윙 연습은 7번 아이언으로 했다. 대부분 땅을 쳐서 흙을 한 움큼 퍼올리거나 공 머리를 쳐서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버리곤 했다. 가끔 정타를 때리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따-악.

 

머리 올린 날

점점 강렬해지는 햇빛 아래에서 열심히 공을 쳤다. 하지만 50여 개의 골프공 중에 제대로 맞춘 것은 5개도 채 되질 않았다. 연습을 계속하면 조금씩 나아질 것 같았다. 한 바구니의 공을 더 가져오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아재가 그만하고 가자고 하셨다. 연습은 그만하고 라운딩을 나가자는 이야기셨다. '네??? 그래도 돼요?' 나는 당황해서 반문했지만, 잘 못 쳐도 그냥 경험 삼아 돌아보자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골프 입문 30분 만에 머리를 올리게 되었다. 어라?

 

지평선을 향해 스윙

인도인 캐디 2명을 데리고 베이스에서 가까운 1번 홀부터 라운딩을 시작했다. 오늘은 1번 홀부터 9번 홀까지 도는 하프 라운딩, 비용은 1인당 1,000루피 정도, 캐디비는 포함되어 있었다. 2016년 기준 1루피는 17원, 즉 17,000원. 나중에 준 캐디의 팁까지 포함해서 2,200Rs. = 38,000원정도가 소모되었다. 한국에 비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다.

 

먼저 아재가 첫 공을 쳤다. 아재는 싱글 타수의 고수로서 엄청나게 안정된 자세로도 우드 스윙을 마쳤다. 물론 공은 쭉쭉 뻗어나갔다. 싱글 타수는 18홀 72타 기준 오버파가 +9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공을 81개 미만으로 쳐서 라운딩을 끝내버린다는 이야기, 그냥 엄청난 고수라고 알면 된다.

 

알바트로스(-3) - 이글(-2) - 버디(-1) - 파(0) - 보기(+1) - 더블보기(+2)

 

몇 타만에 이 공이 여기로 왔을까요?

아재의 샷이 끝나자 나도 곧장 준비를 했다. 아직도 내가 라운딩을 나왔다는 사실이 얼떨떨해서 몸이 삐그덕거렸다. 하지만 배운 대로 티샷 위에 골프공을 올리고 우드를 공에 조심스럽게 리드한 뒤 힘껏 휘둘렀다. 초심자의 행운일까, 연습 중에는 한 번도 맞지 않았던 우드가 공을 정타로 때렸다. 우드샷이 정확히 공에 맞는 손맛은 진짜 놀라웠다. 빠-악, 소리와 함께 손에 전달되는 떨림때문에 백스윙이 멈춰버리기도 했다. 공이 쭉쭉 뻗어나갔다. 2타째, 마구잡이로 휘두른 아이언 스윙도 정확히 맞으면서 그린에 안착했다. 4번의 짤짤이 퍼팅으로 6타 만에 공을 홀에 집어넣으면서 더블 보기(+2)를 달성했다. 와; 나 혹시 천재인가?


콜라 골프장 베이스

첫 라운딩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끝내고 다시 베이스로 돌아왔다. 막 정오로 달려가는 시간대여서 날씨는 엄청나게 고온 건조했다. 시작할 때 받았던 라운딩 기록지에는 1번 홀 -2 더블보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2번 홀에서부터 진정한 연습도 안 한 초보자의 철저한 라운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번 홀에서부터 9번 홀까지 전부 +10 이상(13타 이상)을 기록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프 라운딩을 마치고

공을 굴리던 수직상승하던 어찌어찌 그린 위에 올리면 이미 파 타수는 훨씬 지났고, 이어서 퍼팅으로 수 십 타를 까먹었다. 힘껏 휘두른 스윙에 공이 스쳐 맞으면 틱- 소리가 난다. 저 소리가 너무 싫었다. 기본적으로 각 홀의 파의 2배 이상의 타수는 기록하지 않는다고 한다. 양파라고 그냥 타수를 파 x2로 처리해준다고 ㅠㅠㅠ 물론 아재는 가볍게 45타 가까이를 기록하신 것 같다. 총 36타가 파 이므로 엄청난 솜씨인 것 같다.

 

맥주+사이다의 환상적인 조합

아재는 더운 날씨에 라운딩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가 엄청 맛있다고 했다. 당을 보충하기 위해 킹피셔 맥주에 사이다를 섞어서 사이다 맥주를 제조해주셨는데 정말 꿀맛이 나는 맥주였다. 탄산과 달달한 맛은 갈증을 순식간에 날려줬다.

 

골프장 들개

베이스 식당에는 근처에 사는 들개들이 몰려와서 음식을 구걸(?) 했는데 딱히 손님들도 쫓지 않고 개들도 음식을 주기 전까지 얌전히 있었다. 위 사진은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들개다.

 

라운딩 후 식사

가볍게 샌드위치나 브런치를 주문해서 점심 겸 안주로 먹고, 골프장을 떠났다. 집에 돌아오니 곧장 상키 선생이 와서 영어 회화를 공부를 했다. 순식간에 낮 시간의 대부분을 지나 보냈다. 뒷목 부분에 선크림을 대충 발랐더니 엄청나게 따가워지길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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