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이의 복잡한 이야기

배론 성지

천주교 성지


순조 원년, 다양한 정치적 상황에서 일어난 신유박해는 천주교인에게는 재앙이었다. 정약용마저도 고문을 당하고 귀양을 갈 정도였다. 천주교인 황사영은 배론 마을에 있는 토굴에 숨어서 1만 자가 넘는 백서를 썼다. 조선 천주교의 실태와 청나라에 의한 조선 전복을 꾀하는 건의하는 내용의 글이었고, 끝내 백서가 발각되면서 천주교 박해가 더욱더 심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황사영 백서 사건(https://ko.wikipedia.org/wiki)

 

배론성지 조선시대
배론성지

배론 성지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여 살던 교우촌이다. 1800년(순조~) 대의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황사영 백서 토굴, 조선 최초의 신학당,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 등 다양한 천주교 관련 유적이 있다.

 

천주교성지 배론성지
배론 성지

살짝 비가 내릴 듯 말 듯한 우중충한 날씨, 제천역에서 약 20분을 차로 달려서 배론성지에 도착했다. 구불구불한 산길 때문일까, 마치 산 깊숙이 숨겨진 비밀 장소를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만날 수 있는 풍경은 좁은 계곡을 따라 잘 꾸며진 정원이다. 낮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정말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피는 계절에 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배론성지 안내문
배론성지 안내문

운영시간 및 안내사항

오전 9시 ~ 오후 6시(동절기 5시)

월요일 휴무(성당, 성물점)

애완동물, 취사, 야영 X

 

인생여정길
인생 여정

성지의 입구에는 이상한 미로 같은 산책로가 있다. 무시하고 가로지르면 10초도 걸리지 않는 길이지만, 용수철처럼 촘촘하게 꼬아둔 길이라서 정중앙까지 가는데 10분이 넘게 걸리더라.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사막을 건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서두르지 말고 인생 여정을 천천히 관조하라고 만든 길이다.

 

묵주 기도의 길
배론성지 묵주 기도의 길

입구에서 왼쪽 언덕길을 따라가면 성모 마리아의 여정을 동판에 그려둔 묵주기도 길이 나온다.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꽤 길고 높은 언덕이다. 하지만 비가 살살 내리고 있어서 언덕을 오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대로 본당 쪽으로 향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

성당의 외형은 상당히 세련되었다. 콘크리트 외벽의 줄눈 자국과 거푸집 구멍이 각을 잡고 정렬되어 있어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위에 얹어진 둥근 모습은 방주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날짜는 월요일, 월요일에는 본당과 성물 판매점이 문을 닫는다.

최양업 신부 조각 공원

처음에는 밖에서 미사를 공헌할 수 있는 야외 제단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일대기를 기록한 곳이자 납골당이다. 화려한 겉모습을 가진 조각들 속에 많은 분들이 잠들어 있다.

 

최양업 일대기
최양업 신부 일대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다. 바로 뒤를 이어서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가 바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다. 그의 출생부터 순교까지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대리석 석판에 그려져 있었다. 

 

황사영 토굴
황사영 백서 토굴

 

천천히 길을 따라서 걷다보면 황사영 토굴이 나온다. 저 좁은 곳에서 몇 날 며칠을 숨어 살면서 무명천에 글을 썼다니 대단할 따름이다. 사실 크게 볼 것은 없어서 스쳐 지나가듯 사진만 찍었다.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최양업 신부의 묘는 가보지 못했다. 배론 성지 바로 옆에 있는 사또 가든으로 향했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식욕을 돋우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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