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
술을 마신 다음날 가장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국밥이다. 뜨뜻하고 든든한 국물이 지친 위장에 심심한 위로를 해주기 때문이다. 하얗고 구수한 국밥류와 붉고 얼큰한 해장국류, 두 국물 요리의 대립은 언제나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오늘 방문할 가좌역 맛집 가보자 순댓국은 뽀얀 국물을 자랑하는 돼지국밥과 순대국밥 전문점이다.
가보자 순대국은 가좌역 2번 출구로 나와서 그대로 5분만 직진하면 만날 수 있다. 식당의 외형은 달인이 하는 맛집 분위기를 풍겼다. 미닫이로 된 출입문이 낡아서 잘 열리지 않았는데, 이런 뻑뻑함에서 연륜이 묻어 나왔다.
흰 국물 vs 붉은 국물 대결구도가 무색하게 모든 색깔의 해장국을 팔고 있는 메뉴판이다. 국밥은 돼지고기라는 재료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주문한 메뉴는 특) 모둠순댓국, 순대나 머리고기뿐만 아니라 돼지부속과 내장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곱창순대전골이 궁금해서 다음 방문때는 꼭 먹어봐야겠다.
전형적인 국밥집 기본 반찬 세팅이다. 깍두기와 김치는 적당히 매콤하고 시원한 맛이 국밥에 잘 어울릴 듯싶다. 강한 색깔의 집된장이 눈에 띈다.
부추통을 따로 테이블마다 챙겨주다니, 부산에 온 듯했다. 돼지국밥에는 부추를 양껏 힘껏 넣어 먹어야 제맛이다. 들깨가루와 다대기 양념도 준비되어 있다.
잠시 뒤, 주문한 순대국이 나왔다. 그런데 보글보글 끓어야 할 뚝배기 속의 국물이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국물이 걸쭉하게 끈끈함을 자랑하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얗다 못해 뽀얀 국물이다.
지금 보이는 재료만 해도 머리 고기, 순댓국, 곱창, 간이다. 곱빼기 특)이라서 양이 많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푸짐하다. 슬쩍 떠먹어 본 국물맛은 무척이나 진한 맛이었다. 꼬릿꼬릿한 돼지냄새가 확 올라왔다. 아직 간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깊은 돼지맛 덕분에 충격을 받았다.
진짜배기 돼지국밥을 만났다. 돈코츠 라멘이 생각날 정도로 돼지의 모든 것을 우려낸 듯했다. 최근에 먹은 음식 중, 이런 느낌을 가진 돼지국물은 일본 라멘집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매국노스러운 연상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무척 부담스러운 맛이다. 꼬릿한 돼지 냄새에 더해 니글거릴 정도의 진한 맛이기 때문이다. 민감한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겐 아니다.
부추와 새우젓을 넣고 본격적으로 먹어보자. 새우젓으로 간을 하자 감칠맛만 존재했던 국물에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더해졌다. 강렬하다 못해 폭력적인 진한 돼지맛을 부추의 상큼함으로 중화시켜 준다.
당면순대가 아니라 고기가 꽉꽉 채워진 순대라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또한 머리 고기나 기타 돼지부속들도 쫄깃쫄깃 신선하고 맛있다.
이런 진짜배기 돼지국밥에는 다대기 양념을 넣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막상 밥을 말아서 국밥으로 먹으려다 보니 살짝 매콤함이 더해지면 맛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뽀얀 국물을 찾아서 왔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붉은 국물파인가 보다.
쫄깃하고 퍼석하고 다채로운 식감의 다양한 재료들이 입 안에서 날뛴다. 말이 필요 없는 진한 국물, 다대기 매콤함, 향긋한 부추향, 가라앉은 새우젓의 짠맛 등 든든하다 못해 배가 터질 것만 같다. 뜨거운 뚝배기의 열기에 땀까지 줄줄 흘러내린다.
맛있다. 해장을 한 것인지 보신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복날에 닭고기 대신 진한 가보자 순대국밥은 어떨까?
가보자 순대국
서울 마포구 성암로 46
02-302-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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